타인의 의도 - [인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의도는 직접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말과 표정, 행동과 침묵을 볼 수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의도를 곧바로 볼 수는 없다. 의도는 행동 뒤에 숨어 있다. 사람은 행동을 보고 의도를 추측한다. 그러나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타인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확인되기 전까지 확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타인의 의도를 빠르게 판단한다. 상대가 늦게 답하면 무시했다고 느끼고, 짧게 말하면 불만이 있다고 생각하며, 질문을 하면 반대한다고 해석한다. 이런 판단은 때로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자주 틀릴 수 있다. 이전 글에서 살핀 착각과 오해는 대부분 타인의 의도를 너무 빨리 확정할 때 생긴다. 타인의 의도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행동과 의도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은 타인의 행동을 보고 의도를 읽으려 한다. 그러나 행동과 의도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배려하려고 침묵했지만 상대는 무관심으로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기준을 분명히 하려고 강하게 말했지만 상대는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신중하게 검토하려고 결정을 미루었지만 상대는 책임 회피로 해석할 수 있다.

행동은 의도를 드러내는 통로이지만 의도를 완전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행동에는 상황의 압박, 표현 능력의 한계, 관계의 어색함, 감정의 흔들림이 섞인다. 사람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도 부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고, 나쁜 의도 없이도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의도를 판단할 때에는 행동만이 아니라 맥락과 위치, 반복된 태도와 설명 가능성을 함께 보아야 한다.

의도 추정에는 자기 감정이 개입한다

타인의 의도를 해석할 때 자기 감정은 강하게 개입한다. 불안한 사람은 타인의 침묵을 부정적 신호로 읽기 쉽다. 분노한 사람은 상대의 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중립적인 행동도 이전 상처의 반복처럼 느낄 수 있다. 타인의 의도라고 생각한 것 안에는 사실 자신의 감정이 들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타인의 의도를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타인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다만 자신이 읽은 의도가 실제 의도인지, 자기 감정이 만든 의도인지 구분하려 해야 한다. “상대가 나를 무시했다”는 판단은 “나는 무시당한 것처럼 느꼈다”와 다르다. 이 차이를 구분하는 일이 타자 인식의 중요한 훈련이다.

의도 판단은 관계를 바꾼다

타인의 의도를 어떻게 판단하는가는 관계를 바꾼다. 상대의 행동을 선의로 해석하면 관계는 열릴 수 있고, 악의로 해석하면 관계는 닫힐 수 있다. 상대가 실수했다고 보면 대화가 가능하지만 의도적으로 나를 해치려 했다고 보면 방어와 공격이 시작된다. 의도 판단은 행동을 부른다. 그래서 의도에 대한 인식은 책임을 필요로 한다.

잘못된 의도 판단은 관계를 굳힌다. 한 번 상대를 악의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이후의 행동도 그 틀 안에서 해석된다. 상대의 설명은 변명으로 들리고 상대의 침묵은 회피로 보이며 상대의 배려도 계산으로 느껴진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관계는 실제보다 더 나빠진다. 잘못 읽은 의도가 관계의 현실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의도를 묻는 용기

타인의 의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때로 물어야 한다. 묻는 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묻는 순간 자신의 해석이 틀렸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의 설명을 들을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은 묻지 않는다. 묻는다는 것은 판단을 잠시 유예하고 타인의 설명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의도를 직접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계의 성격, 상황의 긴급성, 권력의 차이, 표현의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묻는 용기와 함께 해석의 절제가 필요하다. 확인되지 않은 의도를 단정하지 않는 태도, 행동의 의미를 여러 가능성 속에서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의도를 묻거나 유예하는 능력은 관계를 보호한다.

반복된 행동은 의도 판단의 근거가 된다

의도를 무조건 알 수 없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의 의도는 반복된 행동 속에서 어느 정도 드러난다. 한 번의 말은 오해일 수 있고, 한 번의 침묵은 상황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방식의 행동이 반복되면 그것은 일정한 태도와 방향을 보여준다. 반복은 의도 판단의 근거가 된다.

다만 반복을 볼 때에도 성급한 단정은 피해야 한다. 반복된 행동이 개인의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구조적 조건에서 나온 것인지, 관계의 왜곡에서 나온 것인지 살펴야 한다. 어떤 구성원이 계속 소극적으로 보인다면 그가 의지가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권한이 없거나 실패를 두려워하는 구조 속에 있을 수도 있다. 반복된 행동은 중요한 근거이지만, 그 근거도 해석을 필요로 한다.

의도보다 책임을 보아야 할 때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의도로만 설명하면 안 된다. 어떤 행동은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를 만든다. 선한 의도였어도 타인에게 해를 줄 수 있고, 나쁜 의도가 없었어도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관계와 조직에서는 의도와 함께 책임을 보아야 한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는 말은 일정한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행동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 결과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다음에는 무엇을 바꿀 것인지가 중요하다. 타인의 의도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의 내면을 단정하는 일이 아니다. 행동과 의도, 결과와 책임을 함께 보는 일이다. 의도를 신중히 다룰 때 인간은 타인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 shikhak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