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배제한다는 착각 - 식학의 관점에서 감정의 문제
[리더의 가면]을 읽고 식학(識學)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비슷한 생각을 말한다. “논리는 이해되지만, 너무 차갑지 않은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기준과 수치, 역할과 규칙을 강조하는 식학의 관점은 자칫 인간적인 배려나 공감을 배제하는 이론처럼 들리기 쉽다. 특히 관계와 정서를 중시해 온 한국의 조직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식학의 관점이 감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감정에 조직을 맡겨두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냉정하게 직시하는 관점이다.
식학의 관점이 ‘차갑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감정을 조직 관리의 중심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조직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구성원의 마음 상태를 살핀다. 동기부여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상처받은 사람은 없는지, 분위기가 나빠진 것은 아닌지를 점검한다. 물론 감정은 조직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그러나 식학의 관점에서는 리더가 구성원의 감정을 관리 대상으로 삼으면 조직은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 빠진다고 본다. 감정은 개인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며 기준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식학의 관점은 감정을 없애자는 것이 않는다. 감정에 의존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감정에 의존하는 조직에서는 판단의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진다. 어제는 이해받았던 행동이 오늘은 문제로 지적되고 같은 결과가 어떤 날은 칭찬이 되고 어떤 날은 질책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구성원들이 성과보다 분위기를 먼저 살피고, 조직의 에너지는 결과를 만드는 데 쓰이지 않고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 위한 방어에 쓰이게 된다.
식학의 관점에서 조직의 기준과 규칙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준이 명확한 조직에서는 감정이 줄어든다. 감정을 억눌러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발생할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무엇이 기대치인지, 어디까지가 책임 범위인지, 어떤 결과가 요구되는지가 분명하면 구성원은 추측하지 않아도 된다. 리더의 기분을 살피거나 말의 뉘앙스를 해석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이때 감정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개인의 영역으로 돌아간다.
그런 까닭에 식학의 관점에서 움직이는 리더는 차가워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람을 덜 지치게 만드는 구조를 지향한다. 감정 중심의 조직에서는 작은 사건 하나에도 감정의 파도가 크게 일어난다. 오해는 쌓이고 서운함은 말로 정리되지 않은 채 남으며, 관계는 점점 복잡해진다. 반면 기준 중심의 조직에서는 문제가 발생해도 논의의 초점이 사람에게 가지 않는다. 무엇이 기준에서 벗어났는지, 어떤 행동이 조정되어야 하는지가 중심이 된다. 이 차이는 조직의 피로도를 크게 바꾼다.
식학의 관점이 감정을 배제한다고 오해받는 또 다른 이유는 리더가 공감의 언어를 관리 도구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리더가 공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식학의 관점에서 조직 문제를 다룬 [리더의 가면]에서는 공감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공감은 위로가 될 수는 있지만 기준을 대신할 수는 없다. 공감만 있고 기준이 없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리더의 가면]은 이 반복을 끊기 위해 공감보다 기준을 먼저 세우라고 말한다.
결국 식학의 관점에서 말하는 조직 운영은 냉정함이 아니라 명확함에 가깝다. 감정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조직을 흔들지 않도록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사람을 이해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이해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식학의 관점은 인간을 기계처럼 다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감정적 존재이기 때문에 감정이 조직 운영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식학의 관점이 차갑게 느껴진다면 식학이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조직의 구조를 먼저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직에서 불필요하게 상처받는 사람을 줄이고 감정 소모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 점을 이해하면 식학의 관점이 리더십과 조직 관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 shi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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