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과 성장은 충돌하지 않는다 - 식학의 관점에서 성장의 문제


식학(識學)의 관점을 어느 정도 이해한 사람들이 다음으로 던지는 질문은 비교적 분명하다. 기준과 규칙, 수치로 운영되는 조직에서 과연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특히 개인의 자율성과 성장을 중시하는 사람일수록 식학의 관점을 ‘관리 중심’, ‘사람을 틀에 맞추는 방식’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식학의 관점은 성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성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다시 묻는 것이다.

많은 조직에서 성장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경험이 쌓이면 성장한다고 말하고,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으면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식학의 관점은 이러한 정의가 실제 조직 안에서 혼란을 낳는다고 본다. 성장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같은 결과를 내고도 ‘도전했다’는 이유로 성장했다고 평가받고, 누군가는 ‘아직 미숙하다’는 이유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이때 성장은 객관적인 변화가 아니라, 평가자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말이 된다.

식학의 관점에서 말하는 성장은 기대치의 상승이다. 이전보다 더 높은 기준을 충족할 수 있게 되는 상태가 바로 성장이다. 이는 감각적인 표현이 아니라 구조적인 정의이다. 기대치가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고, 그 기대치를 넘는 결과를 안정적으로 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식학은 그 상태를 성장이라고 부른다. 이 관점에서는 성장과 기준이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준이 없으면 성장 역시 정의될 수 없다.

식학의 관점으로 보면 조직에서 구성원은 자유롭게 해석할 여지가 줄어든다. 대신 무엇을 하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지가 명확해진다. 이 점에서 식학의 관점은 자율과 방임을 구분한다. 자율은 기준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이고 방임은 기준 자체가 없는 상태이다. 기준이 없는 조직에서는 구성원이 자유로워 보일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식학의 관점은 이 불안을 제거함으로써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예측 가능성이다. 사람은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더 빠르게 학습하고 성장한다. 식학의 관점에서는 조직의 평가 기준과 기대치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구성원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를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때 실패는 낙인이 아니라 정보가 된다. 기준 대비 부족한 지점을 확인하고 다음 행동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학의 관점에서 평가 기준은 이를 통해 성장을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안의 반복 학습으로 만든다.

반대로 기준이 없는 조직에서는 성장이 운에 가까워진다. 어느 리더를 만나느냐, 어느 시점에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성장 여부가 달라진다. 이 환경에서는 구성원이 스스로를 발전시키기보다, 평가자의 성향에 맞추는 데 에너지를 쓰게 된다. 식학의 관점은 이러한 왜곡된 성장을 직시한다. 성장은 관계를 잘 맺는 능력이 아니라 기준을 충족하는 능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식학의 관점에서 구성원의 성장은 더 높은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더 높은 기대치를 감당할 수 있는 상태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기준이 높아질수록 책임도 커지지만 동시에 판단의 여지도 넓어진다. 이때의 자율성은 방임이 아니라 신뢰의 결과이다. 식학의 관점은 이 신뢰를 감정이 아니라 구조 위에 쌓는 것이다.

따라서 식학의 관점에서도 조직 구성원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다만 그 성장은 막연한 가능성이나 감각적인 만족이 아니라 기준과 결과의 축적 위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기준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 shi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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