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과 아는 것 - [인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
보는 것은 인식의 시작이다
인간은 먼저 본다. 세계는 눈앞에 나타나고 사물은 형태를 가지며 사건은 일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람은 어떤 대상을 보고 어떤 말을 듣고 어떤 표정을 읽고 어떤 상황을 경험한다. 이때 보는 일은 인간이 세계와 접촉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본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직접 보았기 때문에 알고 직접 들었기 때문에 이해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보는 것과 아는 것은 같지 않다. 본다는 것은 세계가 나에게 나타나는 일이고, 안다는 것은 그 나타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곧바로 아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장면을 보아도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고, 같은 말을 들어도 서로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다. 보는 것은 인식의 시작이지만 앎은 그 이후에 일어나는 해석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다.
눈앞의 현실은 곧바로 진실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을 쉽게 현실이라고 부른다. 내가 보았으므로 그것은 사실이고, 내가 들었으므로 그것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현실은 곧바로 진실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특정한 위치에서 본 현실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았는가, 어떤 시간에 보았는가, 어떤 마음 상태에서 보았는가에 따라 현실은 다르게 나타난다.
멀리서 본 사람의 표정과 가까이서 본 사람의 표정은 다를 수 있다. 한 장면만 본 사람과 그 앞뒤의 맥락을 아는 사람은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다. 회의에서 침묵하는 구성원을 보고 무관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그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리더의 짧은 지시를 차가운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리더는 기준을 분명히 하려 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은 현실의 일부이지 현실의 전체가 아니다.
보는 일에는 이미 선택이 들어 있다
사람은 모든 것을 보지 않는다. 그는 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일부를 선택해서 본다. 주의가 향하는 곳이 있고 지나치는 곳이 있다. 중요하다고 느끼는 정보가 있고,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버리는 정보가 있다. 이 선택은 의식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험, 감정, 관심, 두려움, 기대가 무엇을 볼지 결정한다. 그래서 보는 일은 이미 중립적이지 않다.
성과에 강한 압박을 느끼는 사람은 숫자의 변화에 먼저 눈이 간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먼저 본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위험의 신호를 더 크게 보고,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은 가능성의 신호를 더 크게 본다. 이처럼 사람이 같은 현실 앞에 서 있어도 서로 다른 것을 보는 이유는, 보는 것이 단순한 감각 작용이 아니라 선택된 주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의미를 붙이는 일이다
본 것을 안다고 말하려면, 사람은 그것에 의미를 붙여야 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무엇을 뜻하는지, 나에게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앞으로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판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는 것은 앎으로 바뀐다. 이때 앎은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의미화이다.
예를 들어 조직에서 어떤 구성원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자. 이 사실은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는 다르다. 어떤 사람은 그를 무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목표 설정이 부정확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은 권한과 책임의 연결이 맞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같은 결과를 보았지만 앎이 달라지는 것이다. 결국 앎은 사실 위에 의미를 세우는 일이다.
보는 것의 확신은 위험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본 것에 강한 확신을 갖는다. 직접 보았다는 경험은 판단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이 확신이 위험할 수 있다. 본 것은 제한되어 있고, 보는 사람의 위치는 부분적이며, 해석은 언제나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본 것을 절대화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다른 가능성을 닫는다. 타인의 설명을 듣지 않고, 맥락을 보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판단을 현실 그 자체로 여긴다.
인식의 성숙은 자신이 본 것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본 현실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내가 본 장면 뒤에 다른 장면이 있을 수 있고, 내가 들은 말 뒤에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으며, 내가 이해한 사건 뒤에 다른 구조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성숙한 인식은 확신을 갖되 그 확신이 부분적일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아는 것은 책임을 요구한다
아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갖는 일이 아니다.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하는 순간, 사람은 그 앎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즉, 내가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해석했으며,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본 것을 안다고 말하면서 그 해석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앎이 아니라 인상에 가깝다. 인상은 순간의 판단에 따라 빠르게 느낀 것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그래서 인상을 말하는 것에는 책임이 크게 따르지 않는다.
인식은 다르다. 인식은 책임 있는 앎을 향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을 곧바로 단정하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 어떤 감정이 개입되었는가. 어떤 경험이 해석을 이끌었는가. 다른 사람은 같은 현실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앎을 깊게 만든다. 책임 있는 앎은 자신이 본 것을 설명 가능한 판단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보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나아가는 길
보는 것은 인간 인식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인간은 보는 데 머물 수 없다. 본 것을 해석하고, 의미를 붙이고, 판단으로 정리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이 본 것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다. 이 거리를 자각하는 사람이 더 깊게 인식할 수 있다.
[인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의 첫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본 것을 어떻게 안다고 말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다고 여기는가에 따라 그의 의식이 형성되고, 의식은 다시 행동으로 이어진다. 잘못 본 현실은 잘못된 앎이 되고, 잘못된 앎은 잘못된 행동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보는 것과 아는 것을 구분하는 일은 인간 행동 철학의 첫걸음이다. © shi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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