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인식 - [인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
언어는 세계를 부르는 방식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부른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사건을 설명하며,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를 정리한다. 언어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흩어진 경험을 하나의 의미로 묶을 수 있다. 이름 붙여진 것은 더 분명해지고, 말해진 것은 다른 사람과 공유될 수 있다. 언어는 인식의 도구이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한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언어는 세계를 보는 방식을 만든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현실은 다르게 보인다. 같은 상황을 “실패”라고 부르면 그것은 부정적 결과의 의미를 갖는다. 같은 상황을 “실험”이라고 부르면 배움의 가능성이 열린다. 언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그릇이 아니다. 언어는 현실을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하는 힘이다.
이름 붙이는 순간 현실은 정리된다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구분 가능한 대상이 된다. 이름이 없을 때 흐릿하던 것이 이름을 얻으면 분명해진다. 사람은 어떤 감정을 “불안”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감정을 다루기 시작한다. 어떤 문제를 “책임의 혼선”이라고 부르는 순간 단순한 갈등이 구조적 문제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름은 현실을 정리한다.
그러나 이름은 동시에 현실을 제한한다. 어떤 사람을 “문제 직원”이라고 부르면 그의 다양한 행동은 문제라는 틀 안에서 해석된다. 어떤 조직을 “느린 조직”이라고 부르면 그 조직의 신중함이나 절차적 안정성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이름은 인식을 돕지만, 잘못된 이름은 인식을 가둔다. 그래서 언어를 사용할 때에는 그 언어가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가리게 하는지 살펴야 한다.
언어는 판단을 이끈다
언어는 판단을 이끈다.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현실을 다르게 판단한다. “책임”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행동과 결과의 연결을 보려 한다. “성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결과의 크기와 속도를 먼저 본다. “관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사람 사이의 감정과 신뢰를 먼저 본다. 언어는 관심의 방향을 결정한다.
조직에서도 언어는 판단의 질서를 만든다. 리더가 어떤 언어를 반복하는가에 따라 구성원은 무엇을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지 배운다. 리더가 매번 수치만 말하면 구성원은 수치를 중심으로 현실을 해석한다. 리더가 기준과 책임을 함께 말하면 구성원은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가 어떤 판단에서 나왔는지도 보게 된다. 언어는 조직의 의식을 훈련한다.
언어는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언어는 현실을 공유하게 하지만, 동시에 오해를 만들 수 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이라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 자유로운 판단을 뜻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책임의 전가로 들릴 수 있다. “성과”라는 말은 어떤 사람에게 공동의 결과를 뜻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압박과 평가를 뜻할 수 있다. 같은 말이 같은 의미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해는 단어의 부족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단어 뒤에 있는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 과거에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자율을 불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책임이라는 말이 처벌과 연결되었던 사람은 책임을 방어적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는 설명되어야 한다. 조직이 중요한 말을 사용할 때에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고 무엇을 뜻하지 않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언어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언어는 현실을 설명할 뿐 아니라 현실을 바꾼다. 어떤 문제를 새롭게 부르면 사람들의 행동도 달라질 수 있다. 실패를 비난의 대상으로 부르면 사람은 숨기려 한다. 실패를 학습의 자료로 부르면 사람은 드러내고 검토하려 한다. 구성원을 통제의 대상으로 부르면 리더의 행동은 감시와 지시로 향한다. 구성원을 판단의 주체로 부르면 리더의 행동은 기준 제시와 책임 설계로 향한다.
이처럼 언어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고, 인식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준비한다. 물론 말만 바꾸어서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말이 바뀌지 않으면 현실을 다르게 보기 어렵다. 이것은 언어가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어떤 언어를 반복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다른 세계를 보기 시작한다.
언어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
언어에는 책임이 있다. 사람이 어떤 말을 사용하면 그 말은 타인의 인식에 영향을 준다. 리더의 말은 특히 그렇다. 리더가 어떤 구성원을 무책임하다고 부르는 순간, 그 구성원은 조직 안에서 그런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 리더가 어떤 상황을 위기라고 부르면 조직은 긴장한다. 리더가 어떤 목표를 절대적이라고 말하면 구성원은 다른 가치를 뒤로 미룰 수 있다. 언어는 행동을 부른다.
따라서 언어는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조심스럽다는 것은 말을 줄이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말이 어떤 인식을 만들고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지 책임 있게 생각하라는 뜻이다. 특히 조직과 공동체 안에서 언어는 권력과 연결된다. 이름 붙이는 사람, 정의하는 사람, 기준을 말하는 사람은 현실을 구성하는 힘을 가진다. 언어의 책임은 인식의 책임이다.
언어를 성찰할 때 인식은 깊어진다
인식을 깊게 하려면 언어를 성찰해야 한다. 나는 어떤 단어로 현실을 보고 있는가. 내가 반복해서 사용하는 말은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가리고 있는가. 내가 당연하게 쓰는 표현은 타인에게 어떤 의미로 들리는가. 내가 붙인 이름이 현실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는가, 아니면 현실을 좁히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언어의 힘을 자각하게 한다.
언어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형식이다. 우리는 언어 없이 깊게 생각하기 어렵고, 언어 없이 공동의 현실을 만들기도 어렵다. 그러나 언어는 언제나 인식을 이끈다. 따라서 언어를 다루는 일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언어를 책임 있게 사용할 때 인식은 더 분명해지고, 의식은 더 정교해지며, 행동은 더 깊은 기준을 갖게 된다. © shi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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