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영향 - [인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
인간은 관계 속에서 세계를 본다
사람은 혼자 세계를 보지 않는다. 언제나 관계 속에서 세계를 본다. 가족, 친구, 동료, 상사, 구성원, 고객, 공동체가 인간의 인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 가까운가,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가, 누구를 두려워하는가, 누구와 갈등하고 있는가에 따라 현실은 다르게 보인다. 관계는 인식의 배경이 아니라 인식의 조건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의미를 배운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부끄러운지, 무엇이 인정받는지, 무엇이 위험한지 관계를 통해 배운다는 말이다. 한 조직에서 책임 있는 행동이 인정받으면 구성원은 책임을 중요하게 인식한다. 다른 조직에서 침묵이 안전하다고 반복해서 경험하면 구성원은 말하지 않는 것을 현실적 행동으로 인식한다. 이처럼 관계는 인간에게 현실의 해석 방식을 가르친다.
가까운 관계는 현실을 강하게 만든다
가까운 관계는 인식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가까운 사람의 말과 반응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 가족의 평가, 동료의 시선, 리더의 한마디, 신뢰하는 사람의 조언은 다른 정보보다 깊게 남는다. 가까운 관계에서 나온 말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정서적 무게를 가진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가까운 관계 안에서 쉽게 영향을 받는다.
가까움은 이해를 돕기도 한다. 상대의 맥락을 알고 반복된 경험을 공유하며 말 뒤의 의미를 더 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움은 인식을 흐리게 만들 수도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더 관대하고 먼 사람에게는 더 엄격한 것이 그 경우다. 가까운 사람의 문제는 상황의 문제로 보고, 낯선 사람의 문제는 성격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가까운 관계가 현실을 따뜻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불균형하게 만든다.
권위 관계는 인식을 조정한다
권위 관계도 인식에 특별한 영향을 준다. 리더, 교사, 부모, 전문가, 상급자의 말은 단순한 의견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 말이 기준이 될 수 있고, 그들처럼 권위를 가진 사람이 어떤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 권위가 현실을 해석하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권위가 정당하게 작동하면 인식이 깊어질 수 있다. 경험 있는 사람의 설명, 책임 있는 리더의 판단, 전문성을 가진 사람의 분석은 현실을 더 잘 보이게 한다. 그러나 권위가 성찰 없이 작동하면 인식이 권위에 종속되고, 사람은 스스로 보지 않고 권위자의 언어를 그대로 현실로 받아들인다. 권위 관계 속에서 중요한 것은 권위가 인식을 열어주는가, 아니면 닫아버리는가이다.
갈등 관계는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
갈등은 또한 인식을 강하게 바꾼다.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기 쉽다. 중립적인 말도 공격으로 들리고, 작은 실수도 의도적인 문제처럼 보이며, 상대의 침묵도 회피나 무시로 해석될 수 있다. 갈등은 상대를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보게 만든다. 이때 인식은 현실보다 관계의 긴장에 더 크게 지배된다.
갈등 관계에서는 정보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상대의 좋은 행동은 우연으로 보고, 나쁜 행동은 본성의 증거로 삼는다. 반대로 자신의 문제는 상황의 결과로 설명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갈등이 더 깊어진다. 서로는 현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갈등이 구성한 현실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갈등 속의 인식은 특별히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인정 욕구는 인식을 바꾼다
사람은 타인의 인정을 원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에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런 인정 욕구가 인식을 바꾸기도 한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의 현실 해석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의 말을 더 쉽게 거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인정받고 싶은 관계 안에서 자기 판단보다 상대의 기대를 먼저 보는 것이다.
조직에서도 인정 욕구는 강하게 작동한다. 구성원은 리더가 무엇을 인정하는지 민감하게 본다. 어떤 행동이 칭찬받고, 어떤 말이 회의에서 받아들여지고, 어떤 결과가 보상되는지 관찰한다. 그러면서 현실을 조직의 인정 기준에 맞추어 보게 된다. 이처럼 인정 욕구는 행동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지만 자기 인식을 흐릴 수도 있고, 인정받기 위해 현실을 보고 싶은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관계는 언어를 통해 인식을 전염시킨다
관계 속에서 인식은 언어를 통해 전염된다. 사람들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말이 공동의 현실 감각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 계속 “우리는 안 된다”고 말하면 구성원은 가능성보다 한계를 먼저 보게 된다. 어떤 조직이 계속 “책임을 보자”고 말하면 구성원은 행동과 결과의 연결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관계 속의 언어는 개인의 인식에 스며든다.
이 전염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신뢰를 말하는 관계는 사람에게 더 넓은 행동 가능성을 보여주고, 냉소를 반복하는 관계는 사람의 인식을 닫을 수 있다. 관계가 단순히 감정적 유대만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관계는 현실을 보는 방식을 공유하게 만든다. 인간은 함께 말하는 방식으로 함께 현실을 구성한다.
관계를 성찰해야 한다
관계의 영향을 자각하지 못하면 사람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현실을 보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많은 판단은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내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고 있는가. 누구의 말을 크게 듣고 있는가. 누구의 말은 쉽게 무시하고 있는가. 어떤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방어적이 되고, 어떤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순응적인가. 이러한 질문은 관계가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드러낸다.
관계를 성찰한다는 것은 관계를 끊어내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관계 없이 인식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관계 속에 있으면서도 관계가 만든 인식의 방향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가까운 관계가 만든 관대함, 갈등 관계가 만든 왜곡, 권위 관계가 만든 순응, 인정 욕구가 만든 선택적 시야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관계를 성찰할 때 인식은 더 자유로워진다.
관계 속 인식에서 책임 있는 의식으로
관계는 인간 인식의 중요한 조건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현실을 배우고, 관계 속에서 언어를 얻으며, 관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게 된다. 그러나 관계가 만든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람은 자기 판단을 잃을 수 있다. 성숙한 인간은 관계의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그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인식을 자기 안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인식이 의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 관계 속에서 배운 현실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자기 기준으로 다시 받아들일 것인가. 권위자의 말을 그대로 현실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그 말의 근거와 책임을 물을 것인가. 가까운 사람의 기대를 자신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자기 도덕의 자리에서 검토할 것인가. 관계의 영향을 성찰할 때 인간은 단순히 관계 속에 반응하는 존재에서 자기 의식을 가진 존재로 나아간다. © shi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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