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의 구조 - [인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
사람은 믿는 것을 확인하려 한다
사람은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려 한다. 어떤 생각을 갖게 되면, 그 생각을 지지하는 정보가 더 잘 보인다. 반대로 그 생각과 어긋나는 정보는 작게 보이거나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 경향은 인간 인식의 중요한 오류이다. 사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믿는 현실을 다시 확인하려 할 때가 많다.
확증은 마음을 안정시킨다. 이미 가진 생각이 옳다고 확인되면 사람은 불안하지 않다. 판단을 바꿀 필요도 없고, 자신의 책임을 다시 물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확증은 편안하다. 그러나 바로 그 편안함 때문에 위험하다. 확증은 새로운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고, 다른 가능성을 닫으며, 잘못된 판단을 오래 지속하게 만든다.
확증은 정보 선택에서 시작된다
확증의 구조는 정보 선택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과 맞는 정보를 더 쉽게 선택한다. 어떤 사람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면 그의 무책임해 보이는 행동이 더 크게 보인다. 반대로 책임 있게 행동한 사례는 예외로 처리된다. 어떤 조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으면 변하지 않는 증거만 모이고, 작은 변화의 신호는 무시된다.
정보를 선택하는 방식이 편향되면 판단도 편향된다. 사람은 자신이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이미 선택된 근거일 수 있다. 보지 않은 정보, 제외한 정보, 불편해서 넘긴 정보가 많다면 판단은 안정되어 보여도 불완전하다. 확증은 정보 부족보다 더 깊은 문제이다. 정보가 있어도 보고 싶은 정보만 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확증은 해석을 고정한다
확증은 정보 선택에서 멈추지 않는다. 선택된 정보는 다시 기존 해석을 강화한다. 해석이 강화되면 다음 정보도 같은 방향으로 읽힌다. 이렇게 확증은 순환 구조를 만든다. 먼저 어떤 생각을 갖고, 그 생각에 맞는 정보를 선택하고, 선택된 정보를 통해 생각을 더 강화하고, 다시 그 생각으로 새로운 정보를 해석한다. 이 순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진다.
관계 속에서도 확증은 강력하게 작동한다. 어떤 사람을 신뢰하지 않기 시작하면 그의 모든 행동이 불신의 증거처럼 보일 수 있다. 그가 늦게 답하면 무시로 보이고, 짧게 말하면 불성실로 보이며, 조심스럽게 말하면 속내를 숨기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행동보다 기존 해석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확증은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든 현실을 유지하는 방식이 된다.
확증은 조직의 학습을 막는다
조직 안에서 확증의 구조는 학습을 막는다. 리더가 이미 어떤 부서가 문제라고 생각하면, 그 부서의 실패만 크게 보이고 구조적 조건은 작게 보일 수 있다. 구성원이 리더를 불신하면 리더의 설명도 통제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조직이 특정 전략이 옳다고 믿으면, 그 전략의 위험 신호를 늦게 알아차릴 수 있다. 확증은 조직의 눈을 좁힌다.
학습하려면 기존 판단을 흔들 수 있는 정보가 들어와야 한다. 그러나 확증의 구조가 강한 조직은 불편한 정보를 밀어낸다. 좋은 소식만 위로 올라가고, 실패의 신호는 숨겨지며, 다른 의견은 부정적으로 해석된다. 조직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을 보면서 계속 움직인다. 그러다 현실과 판단의 간격이 커지면 큰 실패가 발생한다. 확증은 조용하지만 위험한 조직적 오류이다.
확증은 정체성을 보호한다
사람이 확증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히 고집이 세기 때문만은 아니다. 확증은 자기 정체성을 보호한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판단,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 내가 쌓아온 경험이 흔들리는 것은 불편하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 판단을 지키려 한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그것을 검토하기보다 기존의 자신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이 점에서 확증은 도덕적 문제와도 연결된다. 어떤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지식의 수정만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묻는 일이 된다. 확증은 책임을 늦춘다.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지 않으면 책임도 수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증의 구조를 깨는 일은 지적 용기이면서 윤리적 용기이다.
확증을 깨는 질문
확증의 구조를 깨려면 질문이 필요하다. 내가 보고 있는 정보는 내 생각을 지지하는 것뿐인가. 내 판단과 반대되는 정보는 무엇인가. 내가 불편해서 외면한 사실은 없는가. 다른 사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내가 틀렸다면 어떤 증거가 나타나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기존 판단을 흔든다. 그 흔들림이 불편하지만, 인식의 성숙은 그 불편함을 통과해야 한다.
반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하다. 개인은 혼자서 자신의 확증을 깨기 어렵다. 타인의 관점, 다른 위치의 정보, 불편한 질문이 들어와야 한다. 조직에서는 특히 이것이 중요하다. 리더가 반대 의견을 불편해하면 조직은 확증의 구조에 갇힌다. 리더가 불편한 정보를 환영하고, 실패의 신호를 숨기지 않게 만들 때 조직은 더 정확하게 현실을 볼 수 있다.
확증을 넘어 책임 있는 인식으로
확증의 구조는 인간 인식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이미 믿는 것을 확인하려 하고, 그것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정체성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확증에 갇힌 인식은 현실을 잃는다. 현실은 계속 변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만든 해석 안에서만 움직인다. 이런 인식은 행동의 오류를 낳고, 책임의 회피를 만든다.
책임 있는 인식은 자신의 판단을 검토할 수 있는 인식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근거를 묻고, 반대 정보를 찾으며, 타인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확증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확증을 자각할 수는 있다. 자각된 확증은 검토될 수 있고, 검토된 인식은 더 깊은 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식의 성숙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을 넘어, 보아야 할 현실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 shi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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