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위치 - [인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
타인은 나와 다른 자리에 서 있다
타자를 인식한다는 것은 먼저 타인이 나와 다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람은 같은 세계 안에 살지만 같은 자리에서 살지 않는다. 각자는 다른 경험, 다른 책임, 다른 관계, 다른 두려움과 기대 속에서 현실을 본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마주해도 타인은 나와 다르게 볼 수 있다. 이것은 타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가 서 있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의 글에서 우리는 자기중심적 해석이 타인의 위치를 지울 때 인식의 오류가 생긴다는 점을 보았다. 사람은 자기 부담을 크게 보고, 타인의 부담을 작게 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처한 맥락은 자세히 설명하면서 타인의 행동은 단순하게 판단한다. 타인을 인식하려면 이 습관을 멈추어야 한다. 타인의 행동을 보기 전에 그가 어디에 서 있는지 물어야 한다.
위치는 타인의 현실을 만든다
타인의 위치는 타인이 보는 현실을 만든다. 리더의 위치에 선 사람은 결과와 책임, 자원의 배분과 조직 전체의 방향을 본다. 구성원의 위치에 선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실행의 어려움, 평가의 부담, 현장의 조건을 본다. 같은 목표를 두고도 리더와 구성원이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둘은 같은 현실을 두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을 수 있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경영자와 직원, 고객과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각자는 자기 위치에서 현실을 본다. 고객은 사용 경험과 불편을 먼저 보고, 기업은 생산 조건과 비용을 함께 본다. 직원은 업무 부담과 평가를 보고, 경영자는 지속 가능성과 전체 자원을 본다. 어느 한쪽의 현실만이 진짜라고 할 수 없다. 위치는 현실의 일부를 보이게 하고 다른 일부를 가리게 한다.
타인의 위치를 모르면 판단은 빨라진다
타인의 위치를 보지 않으면 판단은 빨라진다. 상대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묻지 않아도 된다. 그는 무책임하고 무례하며 게으르고 이기적이라고 단정하면 된다. 빠른 판단은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복잡한 현실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른 판단은 자주 잘못된 판단이 된다. 타인의 위치를 지운 판단은 현실의 절반만 본 판단이다.
타인의 위치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책임을 감수하고 있었는지, 어떤 압박 속에서 선택했는지, 어떤 경험 때문에 그렇게 반응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은 느리다. 그러나 이 느림이 인식을 깊게 만든다. 타인을 단정하지 않고 그의 위치를 묻는 사람은 더 책임 있게 판단할 수 있다.
타인의 위치는 변명과 다르다
타인의 위치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뜻이 아니다. 위치를 이해하는 일과 행동을 승인하는 일은 다르다. 어떤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한 행동이 책임 있는 행동이었는지는 다시 판단해야 한다. 타인의 위치를 보는 것은 변명을 만들어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 더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한 일이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타인의 위치를 이해하지 않으면 판단은 가혹해진다. 그러나 타인의 위치만 보고 행동의 책임을 묻지 않으면 판단은 흐려진다. 성숙한 인식은 둘을 함께 본다. 그는 타인의 위치를 이해하고, 동시에 그 위치에서 어떤 선택이 가능했는지 묻는다. 타인의 조건을 보되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이것이 관계 속에서 필요한 인식의 균형이다.
타인의 위치는 나의 위치를 비춘다
타인의 위치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결국 나의 위치도 드러낸다. 내가 상대를 어떻게 판단하는가를 보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보인다. 내가 왜 이 행동을 불편하게 느끼는가. 왜 상대의 말이 나에게 위협처럼 들리는가. 왜 나는 이 문제에서 상대보다 내 부담을 더 크게 보는가. 타인을 보려는 과정에서 자기 위치가 드러난다.
이 점에서 타자 인식은 자기 인식과 분리되지 않는다. 타인을 깊게 보려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도 함께 보아야 한다. 자기 위치를 모르는 사람은 타인의 위치를 보기 어렵다. 그는 자기 기준을 보편적 기준으로 여기기 쉽다. 타인의 위치를 인식한다는 것은 타인만 보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타인을 바라보는 위치까지 함께 성찰하는 일이다.
타인의 위치를 묻는 언어
타인의 위치를 인식하려면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 “왜 저렇게 했는가”라는 질문은 쉽게 비난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위치에서 저렇게 보였는가”, “그에게 보였던 현실은 무엇이었는가”, “그가 감수하고 있던 책임은 무엇이었는가”라고 물으면 인식의 방향이 달라진다. 질문의 언어가 타자 인식의 깊이를 결정한다.
조직 안에서도 타인의 위치를 묻는 언어가 필요하다. 리더는 구성원의 실행 조건을 묻고, 구성원은 리더의 판단 부담을 이해하려 해야 한다. 부서는 다른 부서의 제약과 책임을 묻고, 개인은 타인의 역할과 시야를 물어야 한다. 이 언어가 없으면 조직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현실만 주장하게 된다. 타인의 위치를 묻는 언어는 공동 인식의 시작이다.
타인의 위치를 인식하는 성숙
타인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의 마음을 완전히 안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타인의 내면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타인이 나와 다른 위치에서 세계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그 위치를 물으며 그 위치에서 보이는 현실을 이해하려 할 수 있다. 이것이 타자 인식의 성숙이다.
인식의 오류는 타인을 자기 기준 안에 가둘 때 생긴다. 타인의 위치를 보면 그 오류는 줄어든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판단을 멈추는 일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한 준비이다. 타인의 위치를 보는 사람은 상대를 단순화하지 않고, 관계를 쉽게 단정하지 않으며, 행동과 책임을 더 입체적으로 본다. 타인의 위치를 인식할 때 인간은 자기중심적 인식을 넘어 관계적 인식으로 나아간다. © shikhak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