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선택 - [인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
인간은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에는 언제나 많은 정보가 있다. 사람의 말, 표정, 행동, 숫자, 상황의 변화, 주변의 분위기, 과거의 기록, 미래의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일부를 보고 듣고 기억할 뿐이다. 나머지는 지나친다. 이처럼 인식은 정보의 전체 수용이 아니라 정보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자신이 현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선택된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다고 느껴지는가에 따라 정보는 다르게 들어온다. 같은 회의에 참석해도 어떤 사람은 수치의 변화를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발언자의 감정을 기억하며, 어떤 사람은 결정되지 않은 책임을 기억한다. 모두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같은 정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정보 선택이 인식의 방향을 만든다는 말이다.
관심은 정보를 선택한다
사람은 무엇에 관심을 두는가에 따라 정보를 선택한다. 관심은 인식의 초점이다. 성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결과와 수치를 먼저 본다. 관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말투와 분위기를 먼저 본다. 책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가 무엇을 판단했고 누가 결과를 설명해야 하는지 먼저 본다. 이처럼 관심은 세계의 일부를 밝히기도 하고 다른 일부를 어둡게 만들기도 한다.
관심은 필요하다. 관심이 없으면 현실은 너무 넓고 복잡해서 다룰 수 없다. 문제는 관심이 지나치게 좁아질 때 생긴다. 한 가지 관심만이 모든 정보를 지배하면 현실의 다른 차원을 놓친다. 성과만 보는 사람은 성과를 만든 과정의 윤리를 놓칠 수 있고, 관계만 보는 사람은 책임의 명확성을 놓칠 수 있다. 관심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지만 성찰되지 않은 관심은 인식을 좁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특정 정보를 크게 만든다
정보 선택에는 두려움이 개입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정보의 크기를 바꾼다. 사람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다고 느끼는 정보를 더 크게 받아들인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위험 신호를 크게 보고, 비판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타인의 표정과 말투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조직에서 평가를 두려워하는 구성원은 자신의 성과와 관련된 정보에 과도하게 집중한다.
이렇게 두려움이 선택한 정보는 현실의 한 면만을 보여주기 쉽다. 위험을 감지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두려움이 선택한 정보만으로 판단하면 현실을 편향되게 바라본다. 위험은 보이지만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비판은 보이지만 조언은 보이지 않으며, 실패의 징후는 보이지만 학습의 기회는 보이지 않는다. 두려움이 필요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지만 전체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기대도 정보를 선택한다
기대 역시 정보를 선택한다. 기대가 행동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정보 선택을 편향시킬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방향과 맞는 정보를 더 잘 본다. 성공을 기대하는 사람은 긍정적 신호를 크게 받아들이고 변화의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 어떤 계획을 강하게 믿는 사람은 그 계획을 지지하는 정보에 더 민감해진다.
기대가 강할수록 반대 정보는 약하게 보일 수 있다. 경고의 신호를 사소한 문제로 보고 실패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며, 아직 불확실한 결과를 확정된 가능성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현실을 여는 힘이기도한 기대 검토되지 않으면 착각을 만든다. 기대가 선택한 정보와 기대에 맞지 않는 정보를 함께 볼 수 있어야 인식은 균형을 얻는다.
수치는 정보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수치화는 정보를 선택하는 강력한 방식이다. 무엇을 수치로 삼는가는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매출을 측정하면 매출이 보이고, 비용을 측정하면 비용이 보이며, 고객 만족을 측정하면 고객의 반응이 보인다. 측정되는 것은 조직의 인식 안으로 들어오고, 측정되지 않는 것은 쉽게 주변으로 밀려난다. 즉, 수치가 현실을 보이게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선택하기도 한다.
수치가 있다고 해서 현실 전체를 본 것은 아니다. 수치는 특정한 정보를 선명하게 만든다. 그러나 수치 밖의 정보도 있다. 구성원의 피로, 책임의 불균형, 신뢰의 약화, 도덕적 불편함은 쉽게 수치화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인식을 명확하게 하는 수치화는 어떤 현실을 제외하고 있는지 함께 보아야 한다. 정보 선택의 책임은 수치화에도 적용된다.
선택된 정보는 판단을 만든다
사람은 선택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어떤 정보를 선택했는가에 따라 판단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성과 수치만 선택하면 사람의 노력과 구조적 조건을 보지 못할 수 있고, 관계의 분위기만 선택하면 실제 결과와 책임을 흐릴 수 있다. 단기 정보만 선택하면 장기적 위험을 보이지 못할 수 있다. 정보 선택이 판단의 재료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단의 오류는 정보의 부족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정보의 선택 방식에서도 생긴다. 중요한 정보가 있었지만 보지 않았을 수 있고, 불편한 정보라서 외면했을 수 있으며, 자기 기대와 맞지 않아서 작게 보았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숙한 인식 능력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 선택된 정보가 판단을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선택한 정보를 항상 되돌아본다.
정보 선택은 권력과도 연결된다
개인만 정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과 사회도 정보를 선택한다. 무엇을 보고하게 할 것인지, 어떤 수치를 핵심 지표로 삼을 것인지, 어떤 목소리를 들을 것인지, 어떤 문제를 공식 의제로 올릴 것인지 결정한다. 이 결정에는 권력이 작동한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현실의 어떤 부분이 중요하게 보일지 결정할 수 있다.
조직에서 리더가 특정 수치만 반복적으로 요구하면 구성원은 그 수치를 중심으로 정보를 선택한다. 리더가 불편한 정보를 싫어하면 구성원은 좋은 정보만 위로 올리기 마련이다. 반대로 리더가 실패와 위험의 신호를 정직하게 듣는다면 조직은 더 많은 현실을 볼 수 있다. 정보 선택의 구조가 조직의 인식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다. 어떤 정보를 선택하게 만드는가가 곧 어떤 현실을 보게 만드는가이다.
정보 선택의 책임
인식이 성숙하려면 정보 선택의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보지 않고 있는가. 어떤 정보가 나에게 크게 보이는가. 어떤 정보가 불편해서 작게 보이는가. 내가 선택한 정보는 현실의 어떤 부분을 드러내고 어떤 부분을 가리는가. 이 질문들이 인식을 깊게 한다.
모든 정보를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선택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선택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정보 위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러므로 정보 선택은 행동의 책임과 연결된다. 잘못된 정보 선택은 잘못된 판단을 만들고, 잘못된 판단은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책임 있는 인식은 더 많은 정보를 모으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정보를 선택하고 왜 선택했는지를 성찰하는 일이다. © shi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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