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공동체 조직의 한계 - [의식과 조직]
계약은 관계를 규정한다
조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계약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조직 구성원은 일정한 보상을 조건으로 노동을 제공하고 조직은 그 대가를 지급한다. 이 관계는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권리와 의무가 분명하고 각자의 역할도 계약을 통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조직의 기본적인 질서를 형성한다. 조직의 구성원은 자신의 책임 범위를 인식하고 조직은 그 범위 안에서 운영된다. 이와 같이 계약은 조직과 구성원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공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계약은 관계를 정의할 수는 있지만 조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조직 구성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시하는 계약은 구성원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계약에 참여하지만 그 계약이 곧 구성원의 행동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계약 공동체 조직의 한계가 드러난다.
계약은 최소 기준에 머문다
조직과 구성원의 계약은 행동의 최소 기준을 설정한다. 계약에 따라 구성원은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고 조직은 그에 대한 보상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 관계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즉,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은 이행되어야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요구도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계약 구조가 안정성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한편으로는 구성원의 행동 범위를 제한하는 단점이 있다.
계약을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는 조직 구성원은 당연히 계약에 요구된 수준을 스스로가 충족했다고 생각하면 책임을 다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 이상의 행동은 선택의 문제로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직이 성장하기 힘들다.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구성원이 공동의 목표를 향한 추가적인 행동을 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계약은 질서를 만들긴 하지만, 그 질서는 조직 안에서 최소한에 머물 수밖에 없다.
판단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계약 공동체에 머물러 있는 조직에서는 같은 조건에서도 서로 다른 행동이 나타난다. 어떤 구성원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 집중하고, 다른 구성원은 더 높은 수준의 결과를 지향한다. 이 차이는 계약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계약은 동일한 조건을 제공하는데 그 조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행할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다.
이 관점에서 계약 공동체 조직의 핵심 문제가 드러난다. 바로 계약의 한계다. 계약이 조직과 구성원의 행동 범위를 정하지만 판단의 기준을 통일하지는 못한다. 조직 구성원 또한 동일한 계약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기준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조직에서 협력이 필요할 때도 구성원의 행동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 계약 자체가 구성원의 행동을 정렬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책임은 형식에 머문다
계약 공동체 조직에서는 책임도 형식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역할과 의무가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책임의 범위가 일정 부분 정해지긴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이 책임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계약에 없는 영역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때 조직 구성원은 자신의 책임 범위를 계약에 근거해 제한하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조직 안에서 책임이 확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은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는 판단을 회피하고 문제 해결을 지연시킬 수 있다. 그 결과, 조직은 직면한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변화에 취약해진다. 이처럼 책임은 규정하지만 책임이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계약의 한계는 조직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교환 구조의 한계
계약은 기본적으로 교환을 전제로 한다. 계약 공동체 조직의 구성원은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조직은 그에 대한 보상을 지급한다. 이 구조는 합리적이지만 동시에 관계를 제한하는데 구성원은 자신의 기여와 보상을 비교하며 행동을 결정한다. 이때 행동은 공동의 목적보다 개인의 조건에 의해 조정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협력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계약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구성원은 계약 기준을 넘어서는 행동에는 신중해진다. 당연히 조직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안정성을 제공하는 교환 구조는 확장성을 제한한다.
계약을 넘어서는 기준
조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계약을 넘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은 단순히 계약을 이행하는 수준을 넘어 어떤 판단을 공유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강제가 아니라 승인이다. 구성원이 동일한 기준을 받아들이고 그 기준을 행동으로 반복할 때 조직은 비로소 안정성을 갖는다.
분명히 계약은 조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계약에 명시된 명확한 조건과 보상은 기본적인 신뢰를 형성한다. 그러나 조직이 하나의 구조로 움직이려면 계약 위에 머물서는 안 된다. 판단의 기준이 형성되고 그 기준이 구성원의 행동으로 고정될 때 조직은 하나의 구조로 작동한다. 이 전환이 이루어져야 조직과 구성원은 단순한 계약 관계를 넘어선다.
지금까지 살펴 본 계약 공동체의 한계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다. 첫째, 계약은 관계를 정의하지만 구성원의 행동의 방향을 통일시키지는 못한다. 둘째, 계약은 책임을 규정하지만 책임의 확장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셋째, 조직은 계약 위에 존재할 수 있지만 계약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계약을 넘어서는 판단의 기준이 형성될 때 조직은 비로소 하나의 구조와 질서를 갖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계약 공동체 조직의 한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권력 구조로서의 조직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 shi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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