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구성원의 승인이라는 행위 - [의식과 조직]


이전의 글에서 우리는 개인 판단의 자유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조직에서 구성원의 승인이라는 행위에 대하여 살펴볼 차례다.

승인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다

조직에서 판단이 공동의 기준으로 자리 잡으려면 구성원의 승인이 필요하다. 승인은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가 아니다. 어떤 판단을 이해하고, 그 판단을 자신의 행동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적 행위다. 구성원은 조직이 제시한 방향을 듣고, 그 방향이 자신의 역할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해석한다. 그런 다음 그 판단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이 과정을 통해 조직 구성원의 판단은 개인의 의견을 넘어 공동의 기준이 된다.

승인은 겉으로 드러나는 동의와 다르다. 사람은 말로 동의하면서도 실제 행동에서는 그 판단을 따르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긴 설명 없이도 반복된 행동을 통해 어떤 기준을 승인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 따라서 승인은 말보다 행동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조직에서 승인된 판단은 구성원의 행동을 바꾸고, 행동이 반복될 때 조직은 그 판단을 기준으로 삼는다.

외부의 판단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승인

승인은 외부의 판단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조직은 목표와 기준을 제시하지만, 그 기준이 구성원의 행동을 움직이려면 구성원 내부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는 판단하고 비교하며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이 검토 과정을 거친 뒤에 이루어지는 수용이 승인이다.

승인은 개인의 도덕적 판단과 조직의 윤리적 기준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조직은 공동 행동을 위해 필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개인은 자신의 내면 기준에 따라 어떤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살핀다. 승인이라는 행위는 이 둘 사이의 긴장을 연결하는 것이다. 개인은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며 조직 또한 개인의 내면을 강제로 대체하지 않는다. 대신에 양자는 승인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행동 질서를 형성한다.

승인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조직에서 모든 판단이 승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구성원이 어떤 판단을 받아들이려면 그 판단이 이해 가능해야 한다. 판단의 이유가 설명되어야 하고 적용 기준이 공개되어야 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이 드러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질 때 승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구성원은 단지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이 왜 필요한지 이해한다.

그런 까닭에 당연히 승인은 투명성을 요구한다. 기준이 숨겨져 있거나 사람에 따라 달라지면 조직 구성원은 그 판단을 신뢰하기 어렵다. 또한 승인은 일관성을 요구한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기준이 적용될 때 조직 구성원이 그 판단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측 가능성이 생기면 행동은 안정된다. 승인된 판단은 바로 이 안정성을 통해 조직의 구조로 자리 잡는다.

승인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승인은 자유로운 판단을 전제로 한다. 조직 구성원이 어떤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여도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면, 그 상태를 완전한 승인으로 보기 어렵다. 그가 그 기준에 따라 행동을 하더라도 자기 판단을 통해 받아들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조직이 구성원에게 완전한 승인을 얻으려면 구성원이 질문하고 해석하고 때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

이처럼 승인에 필요한 자유는 조직의 질서를 약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더 안정된 질서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다. 구성원이 묻고 이해한 뒤에 받아들인 판단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판단은 빠르게 실행될 수는 있어도 내부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승인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은 조직의 정당성을 만드는 과정이다.

승인과 권력의 관계

승인은 권력의 정당성과도 깊이 연결된다. 조직에서 리더의 판단은 구성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 영향력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구성원이 그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조직에서 리더의 지위가 판단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를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그 판단을 정당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판단이 정당성을 얻는 과정에는 승인이 필요하다.

조직 구성원 스스로의 판단과 승인이 없는 권력은 지속되기 어렵다. 구성원이 겉으로는 따르는 척을 해도 내면에서는 그 판단을 자신의 행동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는 리더와 구성원의 행동이 얕아지고 책임도 약해진다. 반대로 승인된 권력은 조직 구성원의 적극적인 행동을 이끈다. 구성원이 리더의 판단을 단순한 지시로 받아들이지 않고 공동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때 권력은 강제가 아니라 질서의 원리로 작동한다.

승인은 행동으로 증명된다

승인은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승인된 판단은 반드시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조직 구성원이 어떤 기준을 받아들였다고 말하면서도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승인은 조직에서 아직 구조가 되지 못한 상태다. 조직은 말의 일치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반복을 만드는 구조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승인은 판단과 행동을 연결하는 연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내면에서 이루어진 수용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날 때, 조직은 행동 공동체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승인된 판단은 점차 조직의 질서가 된다. 조직 구성원이 같은 기준에 따라 움직이고 그 움직임은 조직의 예측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다.

행동 공동체를 만드는 행위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승인은 조직을 형성하는 핵심 행위다. 사람은 모일 수 있고 계약을 맺을 수 있으며 감정적으로 결속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의 기준을 승인하지 않으면 모임은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즉, 승인이라는 행위가 개인 판단을 공동 판단으로 전환하고 공동 판단을 행동의 기준으로 만들기 때문에 행동 공동체인 조직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승인된 판단 위에 만들어진 행동 공동체가 조직다. 행동 공동체의 조직 구성원은 자신의 판단을 보존하면서도 공동의 기준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균형이 유지될 때 조직은 강제에 의존하지 않고 행동을 만들어낸다. 결국 승인은 조직이 권력 구조를 가지고 정당성을 유지하게 하는 조건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승인이라는 행위가 조직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직 구성원의 승인이라는 행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조직에서 복종과 동의의 차이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 shik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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