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 없는 이해 - [인식과 의식, 그리고 행동]


이해했다고 해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어떤 기준을 이해할 수 있다. 그 기준이 왜 필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지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했다고 해서 그 기준을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해는 인식의 영역에 가까우며, 승인은 의식의 영역에 가깝다. 사람은 머리로 이해하고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승인 없는 이해는 인간 행동에서 자주 나타난다. 사람은 책임이 중요하다는 말을 이해하지만 책임을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정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불리한 상황에서는 침묵을 선택할 수 있다. 조직의 기준을 이해하지만 그 기준이 정당하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이해는 행동을 준비할 수 있지만, 행동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해는 외부에 머물 수 있다

이해는 때로 외부에 머문다. 사람은 어떤 기준을 지식처럼 알고, 규칙처럼 외우며, 상황에 맞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 기준이 자기 내면의 판단을 바꾸지는 않는다. 이때 기준은 밖에 있다. 그는 기준을 말할 수 있지만, 그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승인 없는 이해이다.

외부에 머문 이해는 조건에 따라 쉽게 약해진다. 감시가 있으면 따르고, 불이익이 있으면 지키며, 평가가 있으면 맞추려 한다. 그러나 조건이 사라지면 행동도 약해진다. 기준이 내면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인 없는 이해는 외부의 구조가 강할 때만 행동을 유지할 수 있다. 그 행동은 자기 기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 압력에 의해 유지된다.

승인 없는 이해는 냉소를 낳을 수 있다

기준을 이해하지만 승인하지 못할 때 사람은 냉소를 가질 수 있다. 그는 조직이 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도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정당하게 작동한다고 믿지 못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따르지만 속으로는 믿지 않는다. 이 상태가 오래되면 냉소가 생긴다.

냉소는 단순한 불만과 다르다. 냉소는 기준을 이해하면서도 그 기준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는 상태이다. 사람은 말과 실제가 다르다고 느끼고, 기준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하며, 책임의 언어가 실제로는 통제의 언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승인 없는 이해가 반복되면 기준은 신뢰를 잃고, 사람은 행동의 의미를 잃는다.

승인 없는 이해는 복종을 만들 수 있다

승인 없는 이해는 복종을 만들 수 있다. 사람은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따를 수 있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요구하기 때문에 따르고, 조직에 속해 있기 때문에 따르며, 손해를 피하기 위해 따를 수 있다. 이런 복종은 현실에서 자주 필요할 수도 있다. 공동체 안에서 모든 기준을 매번 완전히 승인한 뒤에만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인 없는 복종은 깊은 책임을 만들기 어렵다. 사람은 따르지만 자기 행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패가 발생하면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행동은 있었지만 의식은 충분히 참여하지 않았다. 이때 행동은 외부의 요구에 대한 수행으로 남는다. 승인 없는 이해는 조직을 움직일 수 있지만, 책임 있는 행동 공동체를 만들기는 어렵다.

승인 없는 이해는 질문을 필요로 한다

승인 없는 이해가 나타날 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강제가 아니라 질문이다. 왜 이해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 기준이 정당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준의 내용이 문제인가, 적용 방식이 문제인가, 권력의 신뢰가 부족한가, 책임의 배분이 불공정한가.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승인 없는 이해는 단순한 태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사람이 기준을 승인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정당할 수도 있고, 자기 방어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질문은 승인 없는 이해를 의식의 과정으로 바꾼다. 기준을 다시 검토하고, 자신의 거부감을 살피며, 기준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이해하게 한다. 질문 없는 강제는 이해를 복종으로만 묶는다.

승인 없는 이해와 자기 성찰

승인 없는 이해는 외부 기준의 문제만이 아니다. 자기 성찰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은 왜 자신이 어떤 기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살펴야 한다. 그 기준이 정말 부당한가. 아니면 그 기준이 자신에게 불편한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에 거부하고 있는가. 자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기준의 내용인가, 기준을 제시한 사람에 대한 불신인가, 과거 경험의 상처인가.

이 관점이 중요하다. 승인하지 못한다고 해서 항상 기준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이 기준 앞에서 방어하고 있을 수 있다. 반대로 기준을 이해했다고 해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기준은 정말 부당할 수 있다. 성숙한 의식은 이 둘을 구분하려 한다. 자기 방어와 정당한 거부를 구분하는 일이 필요하다.

승인 없는 이해를 넘어서

승인 없는 이해를 넘어서려면 기준은 정당해야 하고, 사람은 성찰해야 한다. 기준이 공개되고, 적용이 일관되며, 책임이 공정하게 배분될 때 사람은 기준을 승인할 가능성이 커진다. 동시에 사람은 자신이 왜 그 기준 앞에서 머뭇거리는지 보아야 한다. 기준과 자기 의식 사이의 거리를 살펴야 한다.

이해는 승인으로 깊어져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이해가 승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해는 정당한 거부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해한 뒤 멈추지 않는 일이다. 이해한 기준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수정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승인 없는 이해는 의식의 중간 지점이다. 그것을 통과할 때 인간은 자기 기준을 더 분명히 세울 수 있다. © shikhak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리더의 말과 행동이 왜 중요한가? - [리더의 가면]에서 말하는 식학 리더십

식학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이해 - 식학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는 성찰

감정을 배제한다는 착각 - 식학의 관점에서 다루는 감정의 문제

성과가 반복되는 조직은 무엇이 다를까 — 안도 고다이가 말하는 수치화 [수치화의 귀재]

[리더의 가면] 숫자 관리 관점 - 식학(識學) 조직관리

기준과 성장은 충돌하지 않는다 - 식학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개인의 성장

정렬된 조직은 흔들리지 않는다 - 식학의 관점에서 성과를 내는 조직의 조건

인식과 의식의 차이 - [의식과 조직]

감정적인 리더가 일으킨 실패 - [리더의 가면]에서 말하는 식학 리더십

[리더의 가면] 조직 관리 관점 - 식학(識學) 조직관리